Hyangseol kim hyunji 향설 김현지
B. 1983
향설 김현지(香雪 金炫知)는 선과 점의 반복과 축적을 통해 생명의 에너지와 빛의 흐름을 탐구하는 회화 작가다.
부산에서 성장하며 바라본 바다는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는 늘 같은 모습처럼 보이지만, 단 한 번도 같은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 움직임 속에서 생명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방식, 그리고 시간의 리듬을 발견했다. 이 경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흐름을 화면 위에 기록하고자 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작업은 선과 점이라는 가장 작은 조형 요소에서 시작된다. 화면 위에 씨앗을 심듯 선을 긋고 점 하나를 찍을 때마다 화면은 조금씩 자라난다. 선은 시간의 흐름과 움직임을 기록하는 궤적이며, 점은 화면을 구성하는 최소 조형 단위이자, 오늘을 살아내는 생명의 가장 작은 행동이다. 반복되는 선과 점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리듬을 형성하고, 작은 구조는 화면 전체의 흐름 속에서 자기 유사성을 이루며 하나의 풍경으로 확장된다. 각각의 흔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부분의 축적은 전체의 질서를 만들어 간다.
작업은 수채화 점묘법과 자동기술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화면은 계획된 질서 속에서 시작되지만, 물감은 번지고 스며들며 예상하지 못한 흔적을 남긴다. 작가는 이러한 우연을 제거하기보다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통제와 우연이 공존하는 과정 속에서 화면이 스스로 생성되도록 둔다. 점 하나는 다음 점의 위치와 색에 영향을 주고, 그 관계는 다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화면은 반복과 축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가 된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하나의 이미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는 선과 점이 남긴 미세한 흔적과 시간을 발견하고, 멀어질수록 그것들이 하나의 흐름과 파동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은 요소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전체를 이루는 구조는 관객의 시선 속에서도 반복되며, 회화는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감각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반복과 축적은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의 시대 속에서 시간의 밀도를 회복하기 위한 나의 회화적 태도다. 나는 완성된 이미지를 제시하기보다, 선과 점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과정을 화면에 남기고자 한다. 그 흐름은 생명과 시간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이며, 내가 회화를 통해 꾸준히 탐구해 온 세계다.